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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측이 1930년대 하와이에서 일으킨 분쟁 및 사건들 역사게시판

출처는 재미한인 오십년사
2번은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
5번은 조폭들이 상대편 조폭들 나와바리 쳐들어가 접수하는 장면 같다 ㅎㄷㄷㄷ


1. 국민보의 비방사건
와일루아 지방 한인기독교회 리명우 목사가 주상빈의 아내 최일엽을 데리고 호항 출입을 자조하여서 가정이 파산될 지경이라는 기서(투고??)를 주상빈이 [국민보]에 기재한 까닭에 리명우 목사의 명의를 빌어 명예훼손 사건으로 고소하고 배상금 1만 달러를 받으려고 하였으나 사실이 증명되어서 리명우 목사가 재판에 패소하였는데 원래 이 재판은 국민보 사가 배상금을 지출하지 못할 경우에 신문사를 차압하여서 신문을 정간하게 하려던 계획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2. 호항 한인기독교회 폭동사건
호항 한인기독교회 목사 리용직과 이사원 중의 (하와이 대한민) 교민단 동정자들을 축출하려는 계획으로 평신도 대회를 열었다가 의견이 충돌되어서 싸움이 일어났는데 이 때에 몽둥이질과 총질까지 하여 폭동사건으로 재판이 시작되고 이사원이 보관한 기지문권을 빠앗으려는 사건으로 1년동안 재판을 계속하였다.

3. 부인회 폭동사건
1931년 1월에 하와이 대한부인구제회에서 대표회를 진행하다가 교민단파와 동지회파 부인들 간에 의견충돌과 시비가 일어나던 때에 동지회파의 매복하였던 불량한 남자들이 회장에 들어와서 교민단파 부인들의 머리채를 잡고 구타한 후에 재판이 시작되고 부인회가 분열되었다.

4. 교민총단 문부 조사 재판교민단 단원 중의 리승만 동정자들을 교촉하여 교민단 총임원들이 총단 재정을 범용하였다고 정소하여 재판을 시작하였으나 증거가 없으므로 재판이 실패하였다. 이 재판은 총임원을 모함하여 무슨 증거를 잡으면 임원을 다시 선거하자고 혼란을 일으키려는 계획이었다.

5. 교민총단 강제점령과 폭동사건
1931년 1월 10일에 교민단 대의회를 개회하니 대의원 두 파가 참석하였는데 한 파는 법적 대의원이었고 또 한 파는 각 지방에서 리승만 후원자들이 위조 신임장을 갖고 와서 자기들이 정식 대의원이라고 분경을 일으키는 까닭에 대의회를 정지하고 각인의 자격을 심사한 후 동 1월 12일에 다시 개회하고 무자격자의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이 참석을 거절 당하니 동지회 회원들이 성군 작당하여 회관에 돌입하는데 김노듸, 리원순, 정태화, 황용익, 마준영, 정문찬, 한광주, 정윤필, 손창히, 송기준, 신용해, 김상의, 백인숙, 김유실 등이 앞장서서 현관문을 파괴하고 그 뒤를 따라서 70여 명이 고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폭행으로 회관을 점령하였다.
리승만파가 교민단 회관을 점령한 후에 다시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사로 집회실 안에서 남녀 공동 숙식으로 천막생활 하며 주야 수직하였고 선전문을 돌리며 혼란을 일으키므로 사회의 체면손상이 막심하였다.
교민단 당국은 여러방면의 체면을 고려하여 회관을 그들에게 방임하고 충돌을 피하며 시비를 조정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일반 단원들의 감정은 그렇지 않아서 작당하여 회관을 도로 빼앗을 때에 큰 싸움이 일어나고 정형이 험악하였으며 필경에 경찰대가 출동하여 싸움을 정지시키고 회관을 봉쇄한 후에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 재판은 교민단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사건이었는데 1931년 4월 16일에 북미 합중국 순회재판소 크리스티 판사의 판결로 리승만파의 불법행동을 판명하였고 교민단을 적법 임원에게 돌려보내며 다시 불법행사를 하지 말라고 판결을 내렸다.
법정판결을 받은 후에 리승만파의 폭행은 없었으나 이 풍파의 영향을 소청하고 단체를 정돈하기에 5년의 시일을 소비하였다.
이와같은 작란으로 1915년과 1918년과 1921년과 1930년에 큰 풍파와 재판을 일으켜서 소모한 재정이 수십만 달러이며 교회와 단체를 분열하여 독립운동과 단체 발전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그 싸움들의 원인이 민족운동이나 단체 발전에 관한 정견차이가 아니었고 리승만이 단체를 억압하며 재정과 권리를 독점하려는 욕심으로 일으킨 싸움들인 까닭에 매번 싸움의 일방 당사자가 리승만이었다.
이 혼란 시절에 공리를 위하여 악의와 싸워서 승리하고 풍파와 싸움에 시달린 교민단을 변경하여 국민회를 복설하기까지에 유공자는 교민단 총단장 손덕인과 국민회 총회장 리정건이었다.

출처: 재미한인 오십년사 127p~129p (2004) 저자는 김원용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정대협의 이중성 시사관련

딥뉴스]위안부 운동가 김원동씨는 어쩌다 횡령범 누명을 썼나


1. 옛날 위안부 할머니 주변인의 돈관리에 대해선 저렇게 히스테리성 발작을 일으키던 정대협이

2. 현재 자신들의 비슷한 행동에 대해선 다른 잣대를 적용하며 끝없는 변명만 늘어놓는 현실

너무 뻔뻔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출처: 인터뷰 전문보기
5/12 (화) "'정의기억연대 논란', 그 입장을 들어본다"
-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어제 MBC 라디오방송인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나영 정의연 대표가 인터뷰하는걸 다시듣기로 들었다. 논점일탈과 현재논란의 본질흐리기를 대놓고 하는게 너무 웃겼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세가지



1,
◎ 진행자 > 정의기억연대 이사의 자제가 김복동 할머니 그 조성된 장학금을 받은 이것에 대해선 어떤 설명 말씀 주시겠습니까?

◎ 이나영 > 김복동 할머니는 평상시 살아계실 때 다음 세대가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 강한 바람을 갖고 계셨어요. 김복동 평화기금을 만들어서 거기도 5000만 원 기부하시고 나비기금에도 기부하시고 일본 제일조선인학교 아이들에게도 기부하시고 그래서 돌아가실 때 거의 모든 돈을 기부금으로 다 쓰시고 가셨어요. 그러면 할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남은 돈 그 돈은 어디에 써야 되겠습니까? 다음 세대를 위해 써야 되겠죠. 그래서 저희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불한 거고요. 처음에 모집을 했는데 저희가 10명 정도 주려고 했는데 지원한 학생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그 학생 대부분에게 저희가 장학금 지불했고 그리고 그 장학금 대상은 저희 기준이 시민단체 활동을 한 사람들의 자제분이에요. 그 기준에 맞게 저희가 준 거고요. 그 안에는 2, 30년 운동을 했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같이 했던 분도 계실 거고 그 운동만 한 게 아니라 시민운동과 여러 여성운동과 인권운동 하신 분들입니다. 그게 뭐가 잘못됐나요?

◎ 진행자 > 아마도 이런 것 같아요. 다른 시민단체나 이런 데서 활동하신 분의 자제라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지 않느냐, 그런데 예를 들어서 정의기억연대 이사의 자제라고 한다면 당사자 아니냐, 이런 시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 이나영 > 자, 보세요. 정의기억연대는 30년간 활동했고요. 37개의 시민단체가 연대처럼 만들어진 거예요. 이 단체를 잘 몰라서 그래요. 그래서 우리 이사회 자체가 시민단체 대표들이 이사로 들어온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 시민단체를 망라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 진행자 > 연합조직이다.

◎ 이나영 > 네, 그래서 한국정신대 대책협의회로 출발한 겁니다. 협의체예요.




2.
◎ 진행자 > 이사장님, 제가 이렇게 거칠지만 종합해서 이렇게 질문 드려볼게요. 계속 일부 언론이나 일부 정치세력이 제기하는 문제는 간단한 거잖아요. 그렇게 정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쓰라고 기부하고 했던 돈인데 당신들 혹시 횡령하거나 유용한 거 있지 않아? 간단히 하면 이거잖아요. 쉽게 얘기하면. 그러면 이런 계속 정의기억연대는 근거 없는 의혹제기라고 하니까 그럼 어렵게 접근하지 말고 차라리 외부 기관이나 한 번 종합회계감사를 맡겨볼 의향은 없으십니까?

◎ 이나영 > 저희는 법적 절차에 따라서 변호사 한 분과 회계사 한 분의 회계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걸 다 공시하고 있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저희가 왜 시민단체가 그런 식으로까지 의혹에 몰려서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되는지 잘 모르겠고요. 저도 어제 변호사한테 물어봤는데 그럴 이유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 진행자 > 오히려 굴복하는 거다.

◎ 이나영 > 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많은 시민단체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시민단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행동이죠.

◎ 진행자 > 그게 오히려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 이나영 > 네, 자 보세요. 삼성이나 대기업에 대해서 이렇게 보수언론이 철저하게 감사하라고 조사하고 보도를 합니까? 저는 그게 너무 의아해요.




3.
진행자 > 알겠습니다. 마지막 마무리해야 될 것 같은데 혹시라도 만약에 추가적으로 문제제기나 의혹 제기가 있으면 그 뒤에도 정의기억연대는 정면으로 대응하실 겁니까?

◎ 이나영 > 당연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허위보도,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대응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 진행자 > 법적인 대응까지도 준비하고 계신가요?

◎ 이나영 > 네,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감상

4, 90년대 중후반에 정대협 초대 대표가

"아시아 여성기금에서 주는 보상금을 받는 위안부 할머니는 자신이 자발적 창녀였다는걸 인정하는 것."

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제정신으로 돌아가는 단체가 아닌것 같았는데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

강력범죄 관련 남녀성비 통계 시사관련

[출처: 중앙일보] 여자가 더 위험해, 안 위험해? …진짜 통계는 이렇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메갈워마드는 여성들만이 피해자라고 주장한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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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박유하 교수의 주장대로 정대협이 박유하 교수를 고소한게 정대협의 불투명한 회계와 모순된 행동을 초판에서 지적한 내용 때문인지 확인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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